생각

두고 간 게 있어서요.

ssooonn 2022. 3. 12. 01:49

몇 걸음 내려간 그녀가 뒤돌아봤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엔 아쉬움이 어려있었다. 그녀가 미소 짓자 그도 괜찮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마나 더 갔을까. 그와 헤어진 지 오분쯤 지났을 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시만요 어디에요? 두고 간 게 있어서요, 다시 올래요?" 순간 그녀는 묘한 희열을 느꼈다. 그녀는 높아진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네, 다시 갈게요." 차분하지만 들뜬 목소리로. 그녀는 끊자마자 당장 뛰어가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돌아섰다. 천천히 하지만 힘 있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두근거렸다. 가늘지만 깊은 그의 눈빛과 선홍빛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녀는 입가의 미소를 저버릴 수 없었다. 그녀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머리를 쓸어올렸다. 차가운 손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그녀는 두 손을 비비고 굳어가는 입술 끝자락을 매만졌다. 계단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잠시 멈춰 립글로스를 꺼내 입술을 적셨다. 입가에서 떨리는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순간 따뜻한 이불의 촉감을 떠올렸다. 이제 벽을 돌면 계단이었다. 계단 위에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어떤 미동도 없이 촉촉한 눈빛으로 아래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순식간에 달려가 그를 껴안고 추위에 벌게진 그의 볼을 어루만지며 입 맞추고 싶었다. 그녀는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호흡이 가빠졌다. 오늘은 그토록 차가운 고독을 기억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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