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이었다. 그녀는 떨린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내가 돌아보자 그녀도 돌아봤는데, 그녀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이렇게 속삭였다. ‘대박’ 그 소리가 묘하게 나를 건드렸다. 나도 ‘대박'이라고 속삭였기 때문이다. 처음 마주친 단 몇 초 사이에, 여러 빛깔의 감정이 오갔다. 그녀는 자리에 앉았고 나는 약간의 신남을 느꼈다. 떨림, 설렘보다 신남. 그녀의 말들은 새소리였다가 고요한 물도 되었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그 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는데, 내 눈에 너무 아름다운 무지개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느다랗고 긴, 하얗고 선명한 그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되뇌었다. ‘예쁘다' 내 소리를 들었는지, 알아차릴 수 없는 순간에 그녀가 내 안에 들어왔다. 그러자 난 고장나버렸다. 고장 난 입과 귀로 난 모든 순간을 담으려 애썼다. 온통 하얬다.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였다.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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