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3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 모르기 때문에

"알 것 같아서, 더 알고 싶지 않아." 자만에는 미덕이 없고, 핑계는 만들어진다. 지나간 선택의 잔상은 길다. 알아채지 못했고 착각할 용기도 없이 기회를 외면했다. 섣부른 체념은 긴장을 완화시키지만, 냉소와 침묵을 만든다. 그것으로 함께할 시도조차 잠재운다. 봄이 그랬고 여름이 그랬으며, 가을 겨울도 그렇게 꺼졌다. 단지 아직 알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알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지레 겁먹고 숨거나 기대하지 않으려 하는 습관은 새로운 습관을 만든다. 지난 경험의 무게는 무겁다. 선택과 판단은 과거의 경험으로 빚어지고 그 경험으로 인한 망설임은 가능성을 없앤다. 사람에 대한 추측은 수많은 가능의 가지를 자른다. '알 것 같..

생각 속 영화 2020.07.28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 - 조용함에 대한 시선

가끔 모르는 사람들의 순간 속에서 미처 몰랐던 것을 발견한다. 어제는 길을 걷다가 나란히 걸어가는 노부부를 보았다. 그리고 스치듯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를 보러 갔던 날, 옆자리에 한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와 남자가 앉았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팝콘을 나눠 먹으며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그러다 여자가 남자에게 속삭인다. 시시콜콜한 평범한 이야기들. 꼭 서로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그런 얘기를 잠시 나눈 그들은, 말없이 다시 팝콘을 먹는다. 그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말이 없었다. 그들을 본 건 몇 개월 전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이유는 둘 사이에 자리한 감정선이 너무나 선명했기 때문이다. 딱히 뚜렷하지 않은 평범한 순간이 아주 가끔은 특별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내..

생각 속 영화 2020.07.28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 - Nacho chips

"그냥, 그 사람이 다 좋아." 살며시 올라가는 입꼬리 위로 눈이 반짝인다. 정말 행복해 보인다. "어디가 좋냐"는 내 질문이 무의미해졌다. 오래된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꽤 오랫동안 줄다리기하더니 드디어 성공했다. 봄인지 곳곳에서 꽃소리가 만개하다. 그런데 나만 아직 겨울이다. 길어진 이 겨울을 끝내려는 이들이 있다. 이 친구도 그중 하나다. 소개해준다는 말은 날 머뭇거리게 한다. 이상하게 소개를 받으면 머피의 법칙이 작용한다. 한두 번의 소개는 모두 허사였다. 약간의 징크스 같다. 그래서 매번 그런 기회가 올 때면 가볍게 거부한다. 어디로 숨고 싶다. 그 어색한 공기를 마시고 묘한 흐름을 타기 위해 힘을 줘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 서핑을 할 줄도 모르는데, 낯선 바다에서 파도를 타야 되는 느낌이..

생각 속 영화 2020.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