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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Interstellar) - 15와 16사이

차고 다니던 시계가 고장 났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던 초침이 15와 16언저리에서 팔딱거린다. 물 밖에 던져진 물고기 같다. 살기 위해 애쓰는 붉고 검은 물고기. 내가 태어난 시간이 생각났다. 저녁 6시 33분, 난 소리 없이 태어났다. 그 작은 핏덩이는 배 위에 난 붉은 실로 목을 감은 채 나왔다. 풀어진 붉은 탯줄 옆, 의사의 입에서 전해진 공기로 겨우 숨을 받았다. 핏덩이의 입에서 소리가 뿜어져 나온다. 엄마는 고통 끝에 나온 아기의 울음소리 대신 다급한 의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시간을 선명히 보았다. 큼직한 시간 -6시 33분- 그 시간은 내가 세상밖에 눈을 뜬 순간이다. 모든 1분 1초가 눈 뜨는 순간이다. 그리고 눈 감는 순간이다. 탄생과 죽음의 연속은 동시에 일어난다. 그..

생각 속 영화 2020.07.27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 - Nacho chips

"그냥, 그 사람이 다 좋아." 살며시 올라가는 입꼬리 위로 눈이 반짝인다. 정말 행복해 보인다. "어디가 좋냐"는 내 질문이 무의미해졌다. 오래된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꽤 오랫동안 줄다리기하더니 드디어 성공했다. 봄인지 곳곳에서 꽃소리가 만개하다. 그런데 나만 아직 겨울이다. 길어진 이 겨울을 끝내려는 이들이 있다. 이 친구도 그중 하나다. 소개해준다는 말은 날 머뭇거리게 한다. 이상하게 소개를 받으면 머피의 법칙이 작용한다. 한두 번의 소개는 모두 허사였다. 약간의 징크스 같다. 그래서 매번 그런 기회가 올 때면 가볍게 거부한다. 어디로 숨고 싶다. 그 어색한 공기를 마시고 묘한 흐름을 타기 위해 힘을 줘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 서핑을 할 줄도 모르는데, 낯선 바다에서 파도를 타야 되는 느낌이..

생각 속 영화 2020.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