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속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 - Nacho chips

ssooonn 2020. 7. 27. 18:22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 중

 "그냥, 그 사람이 다 좋아."
살며시 올라가는 입꼬리 위로 눈이 반짝인다. 정말 행복해 보인다. "어디가 좋냐"는 내 질문이 무의미해졌다.

오래된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꽤 오랫동안 줄다리기하더니 드디어 성공했다. 봄인지 곳곳에서 꽃소리가 만개하다. 그런데 나만 아직 겨울이다. 길어진 이 겨울을 끝내려는 이들이 있다. 이 친구도 그중 하나다.

소개해준다는 말은 날 머뭇거리게 한다. 이상하게 소개를 받으면 머피의 법칙이 작용한다. 한두 번의 소개는 모두 허사였다. 약간의 징크스 같다. 그래서 매번 그런 기회가 올 때면 가볍게 거부한다. 어디로 숨고 싶다. 그 어색한 공기를 마시고 묘한 흐름을 타기 위해 힘을 줘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 서핑을 할 줄도 모르는데, 낯선 바다에서 파도를 타야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 자연스러운 만남이 많았다. 약간의 친분을 유지하다가 어쩌다 묘한 분위기가 생기고 또 어쩌다 보니 같이 손잡고 걷고 있었다. 그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진지한 만남을 갖기 전에 어떤 일을 거쳤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뎌진 기억을 되짚다 보면 의문이 든다. 꼭 그 사람이어야 했을까? 왜 그 사람을 좋아했을까?

당시에는 여러 증거를 대가며 그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꼭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될 이유도 보인다. 어쩌면 이유라는 건 애초에 없는지 모른다.

감정을 나누는 행위의 원인을 찾는 이유는 그것이 이성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이에게 사랑의 이유를 묻는 것은 헛되다. 돌아오는 대답이 두루뭉술하든 나름의 객관적 분석에 의한 나열이든 사랑 아래엔 수많은 근거가 생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유를 찾는다-보다는 -만든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기란 쉽다.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이 객관적으로 허용되는 요소가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니, 과거에 사랑이라 불리는 감정의 존재 여부도 진짜였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아무 이유 없이 있는 그대로의 누군가를 정말 사랑해본 적이 있을까. 

친구가 한 말이 자꾸 맴돈다.-그냥, 그 사람이 좋다-는 말에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조건 없이 그 사람 전부를 포용하는 문장이다. 이 문장 위에선 서로의 결점마저 사소한 장점이 된다. 어쩌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단순하다. 좋은 데에는 이유가 없다. 이유들이 보여서 좋아하는 게 아닌 좋아해서 이유들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한다-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가 더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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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는 길, 해리와 샐리의 마지막 대사가 생각나 다시 열었다. 이들을 보니 괜히 옆구리가 시려지고 샐리의 법칙이 필요하단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들이 좋다. 

씹고 있는 나쵸가 맛있다. 나쵸가 맛있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