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속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 15와 16사이

ssooonn 2020. 7. 27. 18:32

차고 다니던 시계가 고장 났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던 초침이 15와 16언저리에서 팔딱거린다. 물 밖에 던져진 물고기 같다. 살기 위해 애쓰는 붉고 검은 물고기. 내가 태어난 시간이 생각났다. 저녁 6시 33분, 난 소리 없이 태어났다.

그 작은 핏덩이는 배 위에 난 붉은 실로 목을 감은 채 나왔다. 풀어진 붉은 탯줄 옆, 의사의 입에서 전해진 공기로 겨우 숨을 받았다. 핏덩이의 입에서 소리가 뿜어져 나온다. 

엄마는 고통 끝에 나온 아기의 울음소리 대신 다급한 의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시간을 선명히 보았다. 큼직한 시간 -6시 33분- 그 시간은 내가 세상밖에 눈을 뜬 순간이다.

모든 1분 1초가 눈 뜨는 순간이다. 그리고 눈 감는 순간이다. 탄생과 죽음의 연속은 동시에 일어난다. 그 연속은 무한하다. 내가 있기 전부터 그래왔고 없는 후에도 그럴 것이다. 끝없이 흐르는 시간 위에 난 한없이 작다. 초침이 숫자 사이를 건너는 시간보다 짧은 그 찰나의 순간에 난 태어나고 죽는다. 모든 순간이, 모든 숨이 그렇다.

들숨과 날숨 사이의 쉼이 느껴지지 않듯, 지금도 흘러가는 이 시간을 붙잡아두기란 어렵다. 모든 초침 사이를 다 느낄 수 있다면 내 존재를 더 생생히 느낄 수 있을까. 15와 16사이에서 느리게 멈춰가는 초침의 떨림이 그걸 말하고 있다. 그 미세한 떨림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기약 없는 현재에 머문다. 그리고 회상과 기대가 무뎌지도록 지금을 살고 있냐고 묻는다. 난 이 순간을 살고 있는 걸까?

팔딱거리는 물고기를 보면서 동정을 느꼈다. 다시 숨을 불어넣어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아야겠다. 유유히 흘러가는 물고기를 붙잡아 둘 순 없다. 그저 계속 다음 숫자로 헤엄쳐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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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의 머피는 고장 난 시곗바늘을 보고 힌트를 얻었고 유레카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