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속 영화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 - 조용함에 대한 시선

ssooonn 2020. 7. 28. 15:27

가끔 모르는 사람들의 순간 속에서 미처 몰랐던 것을 발견한다. 어제는 길을 걷다가 나란히 걸어가는 노부부를 보았다. 그리고 스치듯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를 보러 갔던 날, 옆자리에 한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와 남자가 앉았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팝콘을 나눠 먹으며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그러다 여자가 남자에게 속삭인다. 시시콜콜한 평범한 이야기들. 꼭 서로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그런 얘기를 잠시 나눈 그들은, 말없이 다시 팝콘을 먹는다. 그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말이 없었다. 그들을 본 건 몇 개월 전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이유는 둘 사이에 자리한 감정선이 너무나 선명했기 때문이다.

딱히 뚜렷하지 않은 평범한 순간이 아주 가끔은 특별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내 일이 아닌, 지극히 관찰자 입장에서 보는 다른 이의 짧은 순간이 왜 내게 기억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 시간의 포착이 흔한 일은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이름도 모르는 그 둘에게서 난 무엇을 본 걸까. 아주 오래된 사이, 정말 오랫동안 알고 지내서 서로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냥 알 수 있는 사이. 그들은 더 이상 많은 말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둘 사이를 연결하는 가느다란 실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엮어 탄생된 걸까. 사람 사이에 거주하는 그 끈이 보이려면, 얼마나 짙은 감정이 오고 가야 할까. 얼마나 많은 감정의 순환이 거쳐갔을지 아득하다. 그래서 침묵은, 그토록 길었고 그렇게 편했다. 잔잔하고 따뜻했다.

그 둘이 연인인지 오랜 친구 사이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둘 사이에 자리 잡은 것, 거리에 상관없이 느껴지는 선명한 애정의 존재다. 감정의 간극이 조밀해질수록, 그 무게가 제삼자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서 그것이 더 구체화되면 사랑이 되고, 사랑은 생명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갖추게 되는 걸까. 깊어질수록 무거워지고 구체화되어 형태를 가지는, 관계 사이의 감정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문득 나와 그 사람 사이에 오래된 실들을 기억해냈다. 그때는 존재했을, 지금은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그 가느다랗고 긴밀한 실들은 어디로 갔을까. 존재했을까. 너무나 무딘 내 감각이 미처 알지 못 했던 그 실들은 가벼워져 붕 떠버렸고 이내 사라졌다. 사람 사이에 살고, 존재하는, 남아있는 기억과 함께 사라져가는 그것이 그립다. 두 사람이 부러워진다. 

노부부를 보고 영화관 커플이 떠오른 데에는 아마 같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에 사는 그것을 통해서, 그들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았다. 감정은 환상처럼 사라질지언정, 존재하지 않는 환상은 아닌 듯하다. 그것은 살아 숨 쉬고, 지금도 관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재생된다.

그날의 영화는 쳇 베이커를 다룬 이야기였고,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그 둘이 연인이길 바랐다.